[칼럼] 해석된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찾는 청년들
김종진
0
3,456
2019.09.03 05:07
* 이 글은 필자가 연재하고 있는 경향신문 <세상읽기>의 8월 30일자 칼럼입니다.
- 아래 -
[세상읽기]해석된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찾는 청년들
-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요즘 화제다. 책 곳곳에서는 소위 ‘꼰대질’을 하는 기성세대와 자신을 ‘호갱’으로 대하는 기업을 외면하는 청년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사고방식, 행동, 양태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간단, 재미, 정직이라는 키워드다.
[세상읽기]해석된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찾는 청년들
우리 연구소의 20대 연구원도 비슷하다. 관심 없는 내용은 읽지 않고, 3줄 이상의 댓글은 읽지 않는다. SNS에서 큰 이모티콘은 싫어한다. 스마트폰 데이터 비용이 아까운지라 고용량 사진은 사절한다. TV는 보고 싶은 장면만 찾아서 본다. 일상의 대화에서 ‘월급 루팡’(월루)과 같은 알아듣기 힘든 줄임말도 자주 사용한다. 그렇다고 1990년대 청년들이 어설프고 맥락이 없진 않다.
청년들은 우리 사회가 해석해준 대로 살아야 하는 삶을 당당히 거부한다.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청년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더 많은 변화, 더 넓은 참여,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고자 한다. 우리는 서울청년시민회의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청년시민회의는 2017년 시작되어 3년째다. 올해는 시장 직속의 ‘청년청’과 함께 약 500억원의 청년자율예산제를 논의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청년시민회의는 지난 6개월간 청년 1000명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자기 목소리를 내온 공간이다. 20대 초반부터 직장인까지 매우 다양한 청년들은 더 나은 변화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 학생(193명), 회사원(168명), 청년활동가(97명), 구직 청년(89명), 프리랜서(63명) 등 매우 다양하다. 1000명이나 되는 청년들은 왜, 어떤 이유로 한자리에 모였을까. 학교 졸업 후 대기업 취업을 당연시하거나, 공무원시험 준비가 전부인 것에 대한 거부일지도 모른다.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변화의 욕구인 것 같다. 아무리 요구해도 변화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섭섭함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년간 학교를 벗어난 청년들에게 자기증명만을 요구했을 뿐, 사회 가치에 대한 목소리를 낼 공간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청년들의 진지함은 1970년생인 내게는 충격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자기 시간을 내면서까지 각자도생의 시대에 그들의 언어와 목소리로 청년정책을 만들고 있었다. 시민으로서 평등권을 보장하는 작은 참여를 요구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함께 소통하는 길입니다!”라는 무박2일의 워크숍에서 눈에 띈 문구는 청년 감수성을 가늠케 한다.
도시주거, 건강, 교육, 복지안전망, 일자리경제, 민주주의, 평등다양성 등 30여개 분과로 나뉘어 6개월간 청년정책을 만들었다. 일반(45개), 특별기획(9개), 자치구(42개)까지 총 96개 정책이 제안되었다. 프리랜서 안전망부터 안전한 공간, 은둔형 외톨이, 쫓겨나지 않는 도시, 일터 내 민주주의, 중소기업 복리후생 계좌제까지 현실적 정책들이다. 지난 3월 첫 모임을 시작으로 분과회의, 소주제회의, 부서 간담회까지 치열한 고민을 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사업은 특별기획과 자치구 영역이다. 2개 이상의 영역에 걸쳐 추진돼야 할 특별정책과 지역문제 해결 자치구형 정책을 위해 제안된 것들이다. 특히 서울시 청년자치예산 중 자치구에 5분의 1이 할애됐다. 16곳에 77억원이 배정됐다. 소소한 식탁, 재능 공유 마켓, 마음건강, 1인 가구 기반 조성, 미래직업 양성 등 동네 참여예산의 실현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자치구라는 지역을 연결하려는 청년들의 세밀함을 엿볼 수 있다. ‘정책의 변화’와 ‘시선의 확대’를 느낄 수 있다.
청년시민회의를 시작했던 청년들은 ‘1000개의 필요, 500개의 아이디어, 100개의 정책’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경험도, 언어도, 풍경도 낯설었던 행정조직에서 그들은 어떤 상상력을 펼쳤을까. 8월31일 보편적 권리로서 지방정부의 청년정책을 확인하고 싶다. 공정성이 화두인 요즘, 불평등과 격차해소의 중요성이 논의되면 좋겠다. 이제 우리도 핀란드(주택수당, 마음건강), 오스트리아(교육훈련), 프랑스(자기활동계좌제), 영국(사회자본)의 정책들이 청년들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도입되길 기대해 본다.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292040015&code=990100
청년, 청년정책, 청년시민회의, 서울시 청년시민회의, 서울시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