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벌 유통기업의 비정상적인 설날 '정상영업' 무엇이 정상인가(한겨레, 2012.01.19)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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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9 04:04
한겨레 신문 1월19일자 [왜냐면]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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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한 지인이 이런 글을 보내왔다. “오늘 백화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백화점이 신정과 구정(이틀) 쉬지 않고 영업하니, 휴일을 하루로 조정하라고. 고향에 내려가려고 기차표까지 예매했는데 못 갑니다. 신랑만 내려가는 거죠.” 이 직원의 말처럼 서비스 노동자들은 명절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24시간 영업에 익숙하다. 그래서 설날 명절 영업이란 말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이게 정상일까. 한길리서치 여론조사 결과(2012년 1월12일)를 보면 대도시 시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81.9%)이 명절 연휴기간 이틀 휴점에 찬성하고, 10명 중 6명 이상(64.2%)이 선진국처럼 특정 요일과 야간 휴점을 법률로 규제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재벌 유통업체들은 이번 명절에도 영업을 한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대형 유통업체는 1년 365일 영업을 한다. 구제금융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매주 월요일 휴점을 했고, 심야영업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젠 1주일 하루 휴점은 고사하고, 한달에 한번도 쉬지 않을 때도 있다. 일부 대형마트는 24시간 영업을 한다. 심지어 최근 국회에서 대형마트 영업시간이 일부 조정(아침 8시~밤 12시, 월 1~2회 휴점)되었지만 재벌 유통기업들은 못마땅한 것 같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자마자 헌법소원을 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객들이 퇴근 뒤 쇼핑을 해야 한다거나, 주말이나 명절 연휴기간 영업은 고객들이 더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등 핑계를 댄다. 본질이 아닌 이유들이다.
설날 영업의 본질은 하루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벌어야 만족할까. 설날 연휴 3일 중 이틀 영업 방침을 밝힌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4년(2008~2011년) 동안 당기 순이익이 3배(5711억원→1만8463억원) 이상 증가했다. 실제로 재벌 소유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시장 점유율은 이미 80%가 넘었다. 만약 빅3(신세계·롯데·현대) 백화점이 영업을 하게 되면 명절에도 출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한 점포에 많게는 2000명이나 된다. 거의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들이다. 기업 임원들은 설날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이들의 심정은 생각해보았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다른 곳에 숨겨놓은 것인가.
문제는 명절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장시간 노동이다. 백화점 판매직의 75.7%가 주당 52시간이 넘게 일하고 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매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서비스직(31.9%)에 비해 2배, 전체 판매직(19.7%)에 비해 4배나 높은 수치다. 실제로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1749시간으로, 2000시간이 넘는 나라는 그리스(2109시간)와 우리나라(2193시간)뿐이다. 반면에 유럽 선진국들은 주말이나 특정 요일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이라도 휴점을 해야 매장 직원들도 자유롭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본질은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1등 할인점’ 이마트 누리집을 보니 ‘설날 당일에도 정상영업합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나와 있다. 또 신세계백화점에는 ‘23일(월) 설 하루 전점 휴점’이라는 문구 바로 밑에 ‘24일(화) 정상영업합니다’라는 문구를 슬그머니 넣었다. 꼼수도 이런 ‘꼼수’는 없다. 설날 ‘정상영업’, 무엇이 정상인가. 제조업 공장에서 그러하듯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도 일하다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와야 멈출 것인가. 서비스 노동자들도 명절 연휴만큼은 쉴 권리가 있고, 가족과 함께 보낼 권리가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명절을 찾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