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백화점 영업시간과 삶의 질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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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6 04:07
오마이 뉴스에 게재된 기사인데..
최근 유통업 영업시간 연장과 관련하여 보면 좋을 것 같아 올립니다.
- 아래 -
<독일사는 이야기> 백화점 영업시간과 삶의 질
박종완의 <독일 사는 이야기 5>
01.01.28 19:08 ㅣ최종 업데이트 01.01.29 10:56 박종완 (haakebeck)
처음 독일에 오면, 독일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나 가늠하는 척도로, 흔히들 말하는 것이, 혼자서 장을 얼마나 잘 보느냐는 것이다.
독일은 가격 정찰제가 아니라서, 가게마다, 슈퍼마다 값이 틀리다. 슈퍼들도 슈퍼마켓의 이름들에 따라, 전체적으로 비싼 곳, 싼 곳 이렇게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똑같은 물건인데도, 비싸게 사서 속상하는 수도 있고, 단돈 몇 백원에 기분이 좋아 휘파람을 부는 수도 있다.
또한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살 때도, 고기의 부위별로, 얼마만큼을 달라고 독일말로 주문하는 것도, 독일생활 초보자들에게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낭패를 보는 일 중의 하나는 각 상점들의 영업시간을 몰라서 장을 못 보고 집에서 굶주려야 하는 때가 있다.
독일 상점들의 영업시간은 법으로 철저히 지켜져 있기 때문에, 그 시간 안에 장을 못 보면, 집에서 냉장고를 거덜내며 참거나, 값이 거의 두 배나 비싼 주유소의 간이 상점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주유소는 우리나라 24시간 편의점 같이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 많다).
특히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동네 가게는 물론이고, 시내의 모든 백화점들도 문을 닫아서, 자칫 연휴라도 있는 주말이면, 슈퍼마다 미리 식품을 사놓으려는 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작년 크리스마스도, 24, 25, 26일 3일간의 연휴였는데, 나는 바보같이 26일도 휴일인 줄 모르고, 그날 장봐서 손님을 치르려고 했다가 큰 낭패를 본적이 있다.
그러면, 이렇게 영업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이유는 무얼까? 왜 독일은 한국같이 24시간 편의점이나, 24시간 영업하는 대형 할인 매장이 없는 걸까? 독일의 가게주인들이나 백화점 노동자들은 돈을 더 벌기 싫은 걸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독일 상점들의 영업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업시간 연장에 대하여
96년까지 독일에서 각 상점들의 영업시간은 보통 아침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였으며, 토요일은 오후 2시까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예외로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은 8시까지 영업을 하고, 매달 첫 주 토요일은 오후 4시까지 일을 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평일 오후 6시까지 영업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96년부터 경쟁력을 이유로 영업시간을 밤 8시까지로 하는 법이 통과되어, 각 상점들은 밤 8시까지 자유로이 영업시간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이 통과 될 당시 노동자와 노조는 반대의사를 뚜렷이 하고, 집회를 통해서 나름대로 저지투쟁도 했는데, 당시 그들의 주장은 영업시간이 연장되면, 작은 상점들만 피해를 보고, 이익을 얻는 것은 거대 백화점들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큰 상점들이 문을 여니까 자신들도 문을 안 열 수 없는데, 작은 상점은 재정문제로 노동자를 새로 고용할 수 없으므로, 기존의 노동자들이 일을 더해야 하므로, 작은 상점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는 거였다. 여기에 정부와 자본가들은 영업시간이 연장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고, 임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통과 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처음에는 많은 상점들이 8시까지 영업을 했지만, 지금은 큰 슈퍼나 백화점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수의 상점들이 예전처럼 6시에 문을 닫고 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인데, 가장 큰 이유는 영업시간이 길어 봤자 손님이 안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의 창출은커녕 노동자에 대한 착취만 더 심해졌다는 얘기만 들린다.
우선 손님이 안 오는 이유는, 그 동안 독일 국민이 6시까지 물건을 구입하는 관습에 너무 익숙해져서 6시가 넘으면 장에 가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습관이 아니라, 독일 사회에 있어서, 밤에 일어나는 일들은 거의 8시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장에 갈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의 재미있는 영화나 축구중계는 거의 8시에 시작하고, 친구들간의 약속도 보통 7시나 8시고, 각종 사회단체의 세미나, 연극, 음악회도 대부분이 8시에 시작한다. 이 사회에서 8시는 저녁식사 후 자신과 가족들만의 생활을 시작하는 시간이지 절대 장보러 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시간에 손님이 올 리 없고, 노동자들 개인도 자신의 개인생활을 위하여, 그 시간까지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8시 가까이에 슈퍼에 가 보면, 계산대도 반 이상 비어 있고, 그나마도 거의 비정규직 파트타이머들이 지키고 있고, 손님도 거의 없어서, 파장 분위기가 역력하다. 작은 상점들은 아예 8시까지 문을 여는 경우가 드물게 되어 버렸다.
더구나 영업시간의 연장으로 인해 노동조건은 더 나빠졌는데, 전에 6시까지 일할 때는, 어쩌다 예외로 연장근무를 하면, 연장근무수당이 나왔는데, 이제는 이것을 받을 수가 없다. 8시까지가 정규 노동시간이니까 8시까지 일을 해도, 연장근무 수당이 아닌 보통의 시간당 임금을 받으므로, 실질임금은 오히려 삭감이 된 격이다.
그리고, 8시까지 일한다 해도 주당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그 이상으로 일할 수 없어서 교대제로 일할 경우에 임금은 한푼도 오르지 않는다. 그러면 남는 노동시간을 채우기 위하여,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남는 시간은 비정규직 파트 타이머들로 채워져서, 실질적인 고용창출은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다.
노조에서는 이런 현상을 보고 자신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영업시간이 더 늘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베를린 같은 도시에서는 큰 백화점들이 일요일날도 영업을 하게 해달라고, 주장을 하고, 실제로 시위형식으로 일요일도 문을 열어서, 당국의 벌금을 물고서도 영업을 한 적이 있다.
백화점들은 그날의 영업실적을 근거로 일요일도 장사가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날 백화점에 간 시민들은 대부분 백화점이 법을 어겨 가며 영업을 한다니까, 궁금증 차원에서 간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일요일도 모든 상점들이 영업을 하게 된다면, 앞서 말한 이유들로 회의적인 시각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영업시간을 놓고 독일과 한국을 비교하기는 아주 어렵다. 우선 소비 문화가 틀리니까, 우리는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문을 닫았더라도, 두드리면 물건을 살 수 있는 문화에 살았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철저히 영업시간을 지켜와서, 그런 문화의 차이는 쉽게 좁혀질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백화점이나 대형유통업체가 중요한데, 경쟁력을 이유로 백화점들이 점점 휴무가 적어지고, 영업시간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에서는 경제위기 등을 운운하며 회사의 존립이 달린 문제라고 하지만, 지금 현재 세계의 어느 기업도 이 위기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결국 노동자가 이 논리를 인정한다면,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저한 휴무일의 준수나 영업시간 연장반대 등의 주장을 해야 한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소비형태 또한 바꿀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왕이지만 아무리 왕이라도 남의 권리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언제 어디서나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그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개인생활을 하지 못하고, 소비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자신들은 죽어도 연장근무하기 싫어하면서, 상업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영업시간을 요구하는 건 지나친 이기주의다. 나의 노동시간이 중요한 만큼 남의 노동시간도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시민단체 등을 통하여, 영업시간이 연장되거나, 휴무 없이 일하는 업체에 대한 불매운동 등을 통하여, 그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어쩔 수 없이 영업시간을 연장하게 된다면 거기에 따른 단체협상을 확실히 해야 한다. 독일처럼 회사쪽에 만 이득이 가게 하지 말고, 철저한 주당 정규 노동시간의 적용을 주장해야 하고, 그로 인해 남는 노동시간은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의 창출에 온힘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에도 똑같은 임금을 적용하고, 의료보험 등 제반 사회부대비용도 똑같이 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없앰으로서, 비정규직 고용으로 인한 회사측의 반사 이익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흔히들 구멍가게라고 하는 영세업소들은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독일 같은 경우도 벌써 오래 전부터 이런 가게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고, 있어도 아주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특별히 살아남는 경우는 단골고객의 유치를 통한 것인데, 예를 들어 그 고장에서 생산한 야채만을 판다든가, 아주 싱싱한 생선, 혹은 소비자의 주문에 의한 고기 등을 판매함으로써 가게의 신용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거대 자본의 틈새시장 같은 것을 이용하는 것인데, 현재로서는 이런 방법 외에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은, 상업 서비스 부문에서 연중무휴 영업이나, 무한 경쟁 등이 없어지려면, 사회 전반에 걸친 노동시간의 단축이나, 적어도 노동시간을 지키는 문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일 끝내고 장보러 갔는데, 가게가 벌써 문을 닫았으면 어쩌란 말인가? 이럴 경우 대부분은 "이 집 돈 벌기 싫은가 보지?"하고 불평을 하기 마련인데,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신문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현재 노동시간 단축이 노사협상에 있어서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특히나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노동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고, 느긋한 저녁시간을 즐기는 것은 상업노동자들이든, 사무직노동자든,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므로, 다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것부터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출처 : <독일사는 이야기> 백화점 영업시간과 삶의 질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