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저임금노동의 '혜택'에 빠진 학교당직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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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저임금노동의 '혜택'에 빠진 학교당직기사

구도희 5,471 2016.07.12 12:45
 
-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welfarefuture@hanmail.net)
 
 
2017년 최저임금이 결정되지 못한 채 법정시한을 넘겼다. 국가가 보장하는 최저수준의 임금이 당사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수준이 되어, 수많은 저임금노동자에게 언제부턴가 이맘때는 ‘내년에도 역시나...’ 희망 없는 고단함이 이어질 것을 각오하게 되는 때이다. 2016년의 답답한 터널 끝에는 한 점의 빛이라도 들 수 있을까? 오늘 얘기하려는 노동자는 그 한 점의 빛이 간절한 학교당직기사이다. 
학교에 적을 두든 그렇지 않든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며 부러워하는 방학이 곧 시작된다. 초·중·고·대학교에는 그런 방학 동안에도 학교의 시설안전을 책임지는 당직기사들이 근무한다. 교사의 노동권과 양질의 교육을 위한 교권을 보장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 숙직교사제도가 없어지면서 당직기사라는 대체인력이 수업종료 후 야간에 학교시설물의 안전과 보호를 책임지게 되었다. 
 
2~3년 전 세상에 없는 직종 같던 학교당직기사의 비인간적이고 상식 이하의 노동 실상이 국정감사에서 다루어지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가 학교당직기사 노동 실태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직기사는 휴일도 없이 평일 15시간, 주말 63시간 이상 일을 했다. 47%가 100만원 미만의 월급여를 받았다. 곡소리 날 만큼 섬뜩한 상황은 추석과 설 명절기간 내내 홀로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사 당시 당직기사 7,911명 중 5,817명(78.5%)이 66세 이상이며, 10,274개 학교 중 간접고용이 69.3%였다. 권익위원회는 2교대제 근무방식 도입, 휴게시간 보장, 총용역비의 80% 수준으로 인건비 인상을 권고하였다. 필자는 당사자들로부터 인격이 짓밟힌 늙은 노동자의 날 것 그대로의 슬픔을 들었다. 당시 분위기가 조성되었기에 학교 당직기사들은 정부가 어느 정도의 개선안을 제시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2015년부터 감시·단속적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시급액을 100% 적용하기로 했던 조치를 지키는 수준에 그쳤다. 그렇기에 2~3년 전의 실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학교당직기사에게 정당한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는 등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하려면 해당 학교가 용역업체와 합법적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후의 계약 이행과 준수를 감독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본질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비용절감과 최상의 고객만족 서비스를 동시에 누리려는 학교 행정당국, 교육시설의 안전과 보호를 책임지며 상시·지속업무를 수행하는 교육필수인력의 직접고용에 눈감고 있는 교육청, 그리고 용역업체와 이들에 대한 근로감독의 전권을 쥐고 있지만 감독의 사각지대에 학교당직기사를 방치하는 노동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헛헛한 사실은 학교당직기사가 그 어디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힘이 없기에, 관계 당국이 애써 나서지 않아도 세상이 시끄럽지 않다는 데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은전을 베풀 듯 개선책을 도입하는 방식에 침묵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 약자층의 노동권을 ‘배려’의 뜻에서 국가가 보호하도록 놓아두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약자’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게 ‘저임금 노동’의 ‘혜택’을 베푸는 것이 되어버린다. 노동권을 적당히 뭉개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결과가 빚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책개입에 작동하는 암묵적인 전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 학교당직기사를 비롯한 건물 경비직은 고령층 남성의 전형적 일자리가 되었고, 그 비중도 늘고 있다. 게다가 저임금직종이어서 노인빈곤과도 무관하지 않다. 저임금, 빈곤, 고령노동자와 같은 노동약자층은 가까운 미래에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돌봄노동을 하는 중고령층 여성 노동자가 나의 미래이거나 나의 미래를 돌봐줄 노동자인 것과 같다. 나와 무관한 일부 노동취약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적당히 흉내 내는 보호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들의 건강과 노동현장을 잘 살펴야 한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준수하는 데 머물러서도 안 된다. 노동취약자가 일해도 괜찮은 상태로 노동현장을 개선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노동취약층을 보호하는 것이며, 나의 현재와 미래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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