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다시 전태일 열사를 찾으며/이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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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다시 전태일 열사를 찾으며/이원보

구도희 5,565 2013.11.04 12:55

 

-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leewbb@daum.net)

앞으로 열흘 후면 전태일 열사의 추모일이다. 노동자 인간선언을 절규하며 뜨거운 불길 속에 몸을 던진 1970년 11월 13일로부터 마흔 세 번째 해로 다가가는 지금, 이 나라의 일하는 사람들은 그의 살신성인의 헌신에서 비롯된 운동의 성과를 자축하기 보다는 더욱 깊은 성찰과 투지를 불태워야 하는 무거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함이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면서 15년 넘어 노동운동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기본권 봉쇄정책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복지 후퇴에 이은 공무원노조, 전교조, 공공부문 단체협약 변경지시 같은 사례가 그것들이다. 지난 반세기 가까이 전태일 정신을 운동의 기본으로 내세우며 1988년 이후에는 수만 수천의 전국 노동자대회를 통해 자본과 권력의 엄혹한 압박을 넘어 노동해방을 앞당기자고 다짐했음에도 아직도 삶의 기본요건을 걱정해야 하고 노동기본권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결단을 내리기 전, 전태일 열사가 보는 세상은 이러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의 시대, 인간이 인간적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도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세대, "인간의 둘레를 얽어매고 있는, 인간이 만든, 빠져나올 수 없는 인간본질의 희망을 말살시키고 있는, 모든 타율적인 구속상태의 사회이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응하여 "절대로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떤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하며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나는 결단코 투쟁하련다"고 일기에 다짐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절규하며 산화하였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나온 지금, 그의 숭고한 인간애와 열정과 투지를 되살려 노동해방을 이루자고 천번만번 외쳤던 노동자들의 맹세는 그 결말이 참담하리만큼 힘을 잃어왔다.

그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는 격렬한 투쟁 현장에 갈 때마다 노동자의 죽음은 전태일 하나로 충분하다고 한사코 죽지 말고 견디어내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 11월 이후 작년까지 요구조건을 내놓고 목숨을 던진 노동열사는 70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절규한 요구는 노동조건 개선, 부당노동행위 중지, 정리해고 반대, 노조민주화,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원의 각성, 비정규직문제의 해결, 독재타도 등 노동자의 기본적인 삶과 노동운동 조건의 개선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는 자본과 권력이 구사하는 정교하고도 폭력적인 억압수단에 의해 노동자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몰린 나머지 전태일 열사가 진단했던, 인간을 물질화함으로써 희망의 가지를 온통 잘려버린 무시무시한 상황이 오히려 더 심해져 왔음을 의미한다. 절반을 훨씬 넘는 노동대중이 생존 그 자체에 매달려야 하는 1대 99의 사회, 우리 청소년의 70%에게 '가난하고 무식하고 불쌍한 거지'로 비쳐지는 노동자 상태의 개선 가능성은 고사하고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거침없이 파괴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래도 세상은 변화하며 발전한다는 믿음을 그대로 간직해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심해지는 판국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자본의 탐욕스러운 이윤추구와 경제성장 만을 최우선순위로 삼아왔던 국가권력의 전략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태의 모든 것이 해명되는 것은 아니며 노동운동의 책임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역사발전을 추동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몫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1970년 11월 13일로부터 43년이 되는 지금 이미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노동사회 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수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을 비롯해서 웬만한 역사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를 추모하는 노동자대회가 열릴 것이고 전태일문학상, 전태일노동상 등 기념행사가 줄을 이을 것이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어머니와 그의 무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다짐을 되뇔 것이고 절박한 많은 요구와 호소가 격류와 같은 분노의 함성과 함께 노동자대회장을 뒤흔들 것이다.

어느 해, 어떤 행사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올해의 그것 역시 노동운동 발전의 중요한 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한결같을 것이다. 인간해방을 꿈꾸었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뿐만 아니라 총자본의 공세를 차단함으로써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해 내는 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신규 조직 확대, 산별노조 건설, 노동자정치세력화 등 기본활동 추진과정에 일고 있는 일정한 변화의 가능성을 더욱 확산시키고 당면한 반노동 공세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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