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침몰, 국민이 나서야 한다

노동사회

대한민국의 침몰, 국민이 나서야 한다

김동춘 0 4,268 2014.07.08 11: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70일이 훌쩍 지났다. 그러나 아직 칠흑 같은 바닷속에 잠겨 있을 아이들이 11명이나 있다.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거의 가동 정지 상태이고, 지방선거와 월드컵 분위기 때문에 이 사건은 점점 잊혀지고 있다. 언론은 청해진 해운 선주인 유병언 체포 경과만을 중계방송하듯이 보도하면서 침몰 이후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수많은 의문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과거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러했듯이 피해자들만 점점 사회에서 고립되어 외롭고 처절하게 호소하고 있고, 정작 사고의 수습에 책임을 져야 할 국가, 정당, 관계기관, 수사기관은 사건을 외면하고 있다.
 
대한민국 어두운 현실의 축소판, 세월호 참사
어떤 사람은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1980년 광주 5.18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직 세월호의 운항과 전복 원인, 초기 구조과정에서의 해경의 이해할 수 없는 대응, 민간에게 구조를 떠넘긴 이유 등이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하고 자신들만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 안전을 철저히 무시한 청해진 해운, ‘골든타임’을 허비한 해경, 구조과정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구조과정에서 제대로 지휘도 하지 못하고 오직 이미지 관리에만 신경 쓰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공감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대통령,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며 ‘정권 안보’에만 주력한 국가안보실장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이고 국민들 모두가 “이게 과연 국가인가?”라고 묻고 있다.
이 사건은 국가기관의 무책임, 기업과 관료들 간의 유착과 부패, 정부의 관련 책임자의 직무유기, 언론의 거짓보도, 신자유주의 정책과 민영화, 순응주의를 강요하는 학교 교육, 빈부격차와 재난피해의 계층화 등 우리 사회에서 거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집약된 대한민국 어두운 현실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을 둔 학부모나, 국가를 믿고 현대의 고도 위험사회의 온갖 시설을 이용하는 모든 국민들은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극도의 불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번처럼 국가의 재난 대비체제가 작동하지 않아 단순한 사고가 큰 사건으로 발전할 경우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에서 발생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핵 발전소 사고가 터져 수십만명이 사망할 수도 있고, 인근 지역은 거의 폐허화될 위험성도 있다는 경고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천민자본주의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문제의 근원은 바로 이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이 상당수 사람들의 지적이다. 자본가인 선주는 일본에서 거의 수명이 다한 배를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고철 값보다 약간 높게 사들였다. 그는 최대의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승객을 태우려고 선실을 증축하였고 화물도 더 많이 실었다. 그리고 노임을 줄이기 위해 선장을 비롯한 선원과 승무원들을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로 고용하였고 아르바이트까지 채용하였다. 선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안전운항을 위한 비용은 극소화하는 대신 이익은 극대화하려 하였다. 이런 상태로 세월호 선주는 정부의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버젓이 영업을 해왔다. 그리고 여러 기관의 중요 권력자들이 그와 유착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
국가가 공적 기능을 상실한 천민자본주의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하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실종 사망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힘 있고 돈 있는 집의 아이들이었다면 이런 구조 대책이 나왔겠는가라는 지적도 있다. 그리고 이제 부잣집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는 이런 낡은 배로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다고도 한다. 이번에 사망한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부모들은 대부분이 노동자 층에 속한다. 이 학교는 시화·반월공단 옆에 있어서 실종자 가운데 양대노총 조합원 자녀가 다수 있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이 세월호 사건을 한국사회의 지배구조와 연결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세월호 사고를 “정권과 자본에 의한 학살”, 즉 “이윤을 위해 안전과 책임의식도 내팽개치는 자본의 탐욕이 부른 학살”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안전장치도 없는 사회
그런데 지금 온 국민을 정말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 300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한 명도 제대로 구출하지 못하고 전원 수장시키고 말았는데도 아무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앞으로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도 해서 더욱 어이가 없다. 즉 이명박 정권 당시 규제완화의 명분 하에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선박 연령을 20년에서 25년으로 연장하였고, 2012년 이미 일본에서 18년이나 운행한 배를 도입하여 ‘세월호’로 이름을 바꾸어 운항하였기 때문에, 사고의 원인은 구정권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세월호가 노후한 배였기 때문에 전복되었다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며, 구조 과정에서의 정권의 모든 책임을 덮어버리는 정권옹호론이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 언론에서 ‘유병언 체포’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도 구조의 책임을 호도하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실 책임을 누구에게 귀속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책임의 무거움의 정도, 그리고 처벌대상은 정치적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이다. 필자는 박사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1980년대 중반 산재사고를 당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왜 이런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의 부주의”라고 대답한 사람이 다수인 조사 통계표를 본 기억이 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사용자들이 안전장비를 전혀 마련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반드시 장갑 끼고 일하라는 주의사항이 있었는데, 그것을 지키기 않았다고 노동자에게 사고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사업장에 산재가 발생하면 바로 이런 논리 때문에 피해 당사자만 억울하게 되고, 사용자는 아무리 규정을 위반해도 처벌을 당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사고의 경우는 정말 다를까? 강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재수가 없거나 자신의 부주의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따지면 이번 사고에서도 “가만 있으라”는 안내를 무시하고 밖으로 뛰어나오지 않은 아이들이 잘못한 것이며, 수학여행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구태여 보낸 학교나 부모가 잘못한 것이며, 아이들은 그냥 그날 운이 없어서 그런 불행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고의 진상과 원인 규명이 우선이다
지금 이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정말 피해자만 억울하게 되어 가고 있다. 결국 이런 큰 재난을 당하고도 우리가 세월호 사건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 된다. 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 성격을 가진 이슈가 단순한 불가항력적인 자연 재난으로 돌변해 버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의 원인은 외면한 채,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같은 충격요법으로 현 국면을 무마, 탈피하려 하고 있다. 또한 “국가개조”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고 있으나 사건의 구조적인 원인 규명, 사고 이후 당시 교신기록 등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증거 인멸의 시도까지 보이고 있으며 이 사건이 빨리 잊히기를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사상 최대의 해양사고가 발생한지 3개월도 안된 시점에 우리는 벌써 ‘기억투쟁’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우리 사회를 바로 잡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당장은 사고의 철저한 진상과 원인이 규명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희생자 가족은 물론 인권 단체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법적 권한을 지닌 독립적 기구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설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무능과 무책임으로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이 정부는 진상규명의 주체가 아니라 진상규명의 대상이며, 청와대와 대통령까지 예외로 남을 수 없다. 정부가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 제작년도 : 2014
  • 통권 : 2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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