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민주노총 출신이 장악? 퇴화하는 서울시 노동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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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민주노총 출신이 장악? 퇴화하는 서울시 노동이사제”

윤효원 1,891 07.18 12:55

[좌담] “민주노총 출신이 장악? 퇴화하는 서울시 노동이사제”

 


지난해 11월 6일 서울시의회에서 장태용 의원(국민의힘) 등 의원 12명이 <서울특별시 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개정조례안은 올해 5월 3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5월 20일자로 공포되었다. 

 

개정조례안 발의자들은 “서울시의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5조, 제26조 및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에 따라 운영되는 중앙정부의 노동이사제도에 비해 운영대상, 위원의 수, 자격 등에서 과도하게 운영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중앙정부의 노동이사제 운영기준을 반영하여 서울시 노동이사제의 효율적인 운영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개정조례안이 통과됨으로써 서울시의 투자기관과 출연기관 가운데 노동이사를 둘 수 있는 “대상기관”의 조건은 “노동자 정원 100명 이상”에서 “300명 이상”으로 상향되었다. 그리고 “100명 미만인 기관도 이사회 의결로 노동이사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소규모 기관이 자율적으로 노동이사제를 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없앴다. 

 

노동이사의 ‘자격’도 “1년 이상 재직한 사람”에서 “3년 이상 재직한 사람”으로 제한되었고, 노동이사 ‘정수’도 “노동이사 2명”을 두는 기관의 조건이 “노동자 수 300명 이상”에서 “노동자 수 1,000명 이상”으로 상향되었다. 


이로써 노동자 수 300명 미만의 서울시 산하 기관에서는 노동이사가 아예 사라지게 되었고, 300명~1000명 규모의 기관에서는 노동이사 정수가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서울시 투자기관과 출연기관의 노동이사 정수는 21개 기관 총 34명에서 17명으로 축소되었다. 


2016년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현재까지 8년간 별다른 문제없이 운영되어온 노동이사제가 정착을 넘어 발전을 도모해야 할 시점에 위축과 퇴보의 기로에 선 것이다. 서울시 노동이사제 후퇴는 서울시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국 18개 시도의 지방자치단체 및 중앙정부 공기업의 노동이사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17곳은 노동이사제로,  인천은 아직 근로자이사제로 되어 있다. 


<e노동사회>는 ‘서울특별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이사 협의회’ 노기호 의장과 강득주 사무총장, 그리고 강주현 서울시립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을 만나 서울시 노동이사제 조례 개악을 둘러싼 문제점과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들어보았다(정리: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서울시 투자기관과 출연기관의 노동이사제 현황을 소개해 달라.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은 모두 21개다. 그 중에서 노동자 수 1000명 이상 기관은 4개, 300명~1000명 기관은 8개, 300명 미만 기관은 8개다. 지난 5월 서울시의회의 노동이사제 조례 개정으로 노동이사 정수 2명을 둘 수 있는 기관 규모가 노동자 수 300명 이상에서 1000명 이상으로 상향되고, 300명 미만 기관에서는 노동이사제 자체가 폐지되었다. 이로 인해 21개 기관의 노동이사 정수는 조례 개정 이전의 34명에서 개정 이후 17명으로 반토막 났다.”   

 

이사회에서 노동이사는 어떤 역할을 해왔나


서울시 산하 기관의 이사회에서 비상임이사인 노동이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사회는 상임이사와 비상임이사로 구성되는데, 노동이사를 제외한 다른 비상임이사는 기관의 사정과 정보에 밝지 않다. 이 때문에 노동이사는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수준을 넘어, 기관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내부자의 입장에서 발언하게 된다. 노동이사를 시발로 해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노동이사가 참여함으로써 이사회의 토론이 알차고 풍부해 진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지난 5월 말 서울시의회가 통과시킨 노동이사제 개정조례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정수, 즉 노동이사 정원의 축소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노동이사를 줄이는 근거가 미약하고, 개정조례의 근거로 중앙정부 공공기관을 거론하는데 비교 대상이 합리적이지 않다. 


2016년 서울시가 노동이사제를 출범시킨 목적과 취지가 있다. 기관 종사자의 이해관계와 의사를 정확하게 이사회를 비롯한 경영진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과 취지를 무시하고 정수만 잡아서 접근하는 것은 문제다. 지난 8년간 노동이사제를 서울시에서 시행해 왔지만, 기관에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도입 이래 8년 동안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도 서울시의회가 노동이사제 조례를 개악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시의회가 반(反)노동, 특히 반민주노총 정서를 가진 국민의힘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조례 개악을 추진한 세력이 들이댄 논리가 노동이사 중에 ‘민주노총 출신이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출신 노동이사가 많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 그냥 민주노총 출신이 많아서 노동이사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 노동이사제 개악을 주도한 이들은 ‘박원순 뒤집기-서울 바로 세우기’ 일환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시 산하 기관의 노동이사들 중 민주노총 출신은 몇 명인가


“노동조합 활동가라 할 수 있는 노조간부 출신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시 산하 기관의 노동이사 17명 중 민주노총 소속 노조 간부 출신은 3명에 불과하다. 조합원까지 넓히면, 서울시 산하 기관의 노동이사 17명 중 민주노총 출신 10명, 한국노총 출신 2명, 무소속 노조 출신 5명이다.” 


노조가 민주노총 산하 여부인지를 떠나, 서울시 노동이사제 조례에 따라 노동이사가 되려면 노조부터 탈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서울시 조례에 따라 노동이사가 되려면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 비노조원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노조를 탈퇴하는 것을 넘어 기관에서 일하는 전체 직원이 참가하는 투표를 거쳐야 한다. 노동이사 선출 과정에서 특정 노조의 대표자가 아니라 전체 직원의 대표자로 거듭나야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 노조가 할 수 있는 것은 추천 후보를 내는 데까지다. 노조가 추천한 후보를 노동이사로 뽑을지 여부는 노조가 아니라 기관의 전체 직원이 결정한다.”

 

노동이사 활동에서 민주노총 출신 노동이사와 다른 노조 출신 노동이사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노동이사의 활동에서 출신 노조가 어디냐에 따른 차이는 없다. 전체 직원이 투표를 해서 노동이사를 선출하기 때문에 출신 노조의 의견만 청취할 수도 없으려니와, 출신 노조의 입장만 대변할 수도 없는 구조다.”

 

일부에서는 민주노총 간부 출신이 서울시 산하 기관의 이사회를 장악하려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노동이사 1명이 이사회를 장악한다는 논리는 기관의 이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운영되는지를 모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보통 기관 이사회는 15명 안팎의 이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노동이사는 단 1명이다. 노동이사 1명이 어떻게 이사회 전체를 장악할 수 있나. 다른 14명 이사들의 역량과 식견을 무시하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서울시 산하 기관에서 노동이사제가 안착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이유는 


“서울시의 시정을 뒷받침하는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이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와 다양성을 수용하는 문화의 중심에 노동이사제가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기반한 책임 경영(responsible business)의 흐름과 일치한다. ESG의 중심에 노동이사제가 서 있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은 민간기업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노동이사가 활동하고 있다. 국제기준에서 볼 때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지 오래다. 경제 규모에 맞게 우리나라의 산업민주주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 서울시 노동이사제의 8년 경험은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기업의 지속가능한 책임 경영을 촉진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서울시가 주도하는 한국형 노동이사제의 안착은 서울시를 민주도시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한국사회 전체에 활력을 줄 수 있다.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진정으로 서울시 노동이사제의 개선을 원한다면, 노조 혐오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뤄지는 일방적인 개악이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와 연구, 그리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선행해야 한다.”


노동이사제 개악에 맞선 ‘서울특별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이사 협의회’의 향후 대응 계획은 


2016년 이후 8년의 경험을 가진 서울시 노동이사제의 성취와 한계를 평가하는 연구부터 진행해야 한다. ‘민주노총이라서 안 된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 말고, 서울시 노동이사제에 정말로 문제가 있는지, 있다면 구체적으로 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서울시 조례 개악의 문제점을 짚고 제도 개선에 관한 여론 조성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포럼과 공청회를 조직할 것이다. 지난 6월 10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전국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함께 ‘한국형 노동이사제 진화인가 퇴보인가’라는 제목으로 공동포럼을 열었다. 앞으로 서울시의회와 국회에서도 노동이사제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그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포럼을 노동시민단체와 함께 열어갈 것이다.  


그리고 지방정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제도적 근거를 튼튼히 할 수 있도록 「지방공기업법」 등 관련법 개정의 필요성도 살펴보고 있다. 중앙정부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있지만, 지방정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경우 지자체 조례 말고는 별다른 제도적 근거가 없다. 이러한 법제도적 불균형과 공백도 시정해야 한다. 이러한 사업들을 위해서‘서울특별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이사 협의회’의 틀을 넘어 전국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 등 다양한 조직과의 연대사업도 강화할 것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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