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사회적 대화’의 종말과 ‘산업적 대화’로의 이행-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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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사회적 대화’의 종말과 ‘산업적 대화’로의 이행-윤효원

윤효원 48 11:02

‘사회적 대화’의 종말과 ‘산업적 대화’로의 이행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한국 사회적 대화의 제도적 위치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는 오랜 기간 노사관계에서 중요한 제도적 틀로 활용됐다. 정권의 성격에 상관없이 노동의 제도적 발언 공간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기능했으며 교섭이나 합의의 성과보다 정보 공유, 정책 과정 접근, 협의 경험의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일정한 의미를 가졌다. 사회적 대화는 노동의 경제적 요구를 정치적 요구와 분리하지 않고 연결하는 제도적 통로로 이해됐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는 구조적으로 정책 결정 권한과 집행력을 결여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실질적 성과를 축적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논의 절차로 고착됐다.


문재인 정권: 사회적 대화의 무능과 소진

노동존중을 기조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사회적 대화의 구조적 한계는 극복되지 못했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갈등 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했으나 노동기본권, 산업 전환, 고용 구조 개편 같은 핵심 쟁점에서 정책적 결단을 회피했다. 사용자단체는 산업 전환의 비용과 고용 책임을 외면했고, 노동 역시 사회적 대화를 전략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조직적·정치적 힘을 축적하지 못했다.

이 시기 사회적 대화는 정책을 실현하는 제도로 발전하지 못한 채 논의의 반복과 시간 소모로 귀결됐다. 사회적 대화는 이 시기를 거치며 정책 참가 수단으로서의 신뢰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


윤석열 정권: 사회적 대화의 무력화를 넘어 조직노동 파괴로

윤석열 정권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질적으로 달라졌다. 이 시기 사회적 대화의 문제는 더 이상 ‘무력화’나 ‘형식화’가 아니었다. 윤석열 정권은 조직노동 자체를 정책적으로 약화·해체하는 노선을 명확히 취했다. 노조는 정책 협의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압박을 넘어 타도할 적으로 설정됐다. 극우 정권은 사회적 대화의 전제인 상호 인정 자체를 붕괴시켰다.

이 조건에서 사회적 대화는 성립할 수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정책 참가의 통로도, 정치적 갈등 조정의 장도 아니었다. 윤석열 정권을 거치며 사회적 대화는 제도적 기반을 상실했고, 조직노동은 방어 국면으로 내몰렸다. 노동의 입장에서 볼 때, 방어적 국면과 수세적 상황은 이재명 정권 들어서도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대화의 구조적 한계: 법률주의, 추상화, 책임 회피

사회적 대화의 근본적 한계는 모든 갈등을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면서 법률만능주의적(legalism) 해법으로 몰아가는 구조에 있었다. 산업별로 고용 구조, 기술 변화, 위험 노출, 자본 이동 양상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일한 합의 테이블로 끌어올려 법제화를 전제로 하는 포괄적 합의를 노사정 모두가 요구해 왔다.

그 결과 산업별 수준에서 정부와 사용자의 책임은 희석되고, 구체적인 일자리·고용 문제는 선언적 합의로 대체됐다. 이 구조에서는 고용안정, 산업 전환 비용 분담, 안전보건 강화와 같은 실질적 과제가 다뤄지기 어렵다.


대화의 주제와 단위의 전환: 산업적 대화의 필요성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산업적 대화다. 산업적 대화는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추상적 합의가 아니라, 산업별·업종별로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자율적인 규범과 규칙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임금, 근로시간, 고용 형태, 산업 전환 비용, 안전보건 기준은 산업 단위에서만 실질적으로 다뤄질 수 있다. 산업적 대화는 사회적 대화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사회적 대화가 실천적 효과성을 갖기 위한 현실적 기초로 기능한다.


현 시기 산업적 대화의 전략적 의미: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

현 단계에서 산업적 대화는 노조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결합하는 핵심 고리다. 임금과 고용 조건은 개별 사업장 문제를 넘어 산업정책·재정정책·국가 개입과 직접 연결된 정치적 사안이다. 산업적 대화는 노동의 경제적 요구를 산업정책 영역으로 직접 연결시킨다. 이 점에서 산업적 대화는 교섭 기법이 아니라 노동정치의 전략적 형태이며, 산업별 교섭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면서 동시에 산업적 대화의 전 단계를 이룬다. 

사회적 대화의 주체가 노총(총연맹)이었다면, 산업적 대화의 주체는 산별노조·산별연맹이다. 노총은 계급적 대표의 구심이지만, 산업별 고용 구조와 기술 변화, 자본 전략을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단위는 아니다.

산별노조·산별연맹만이 산업 내부의 고용 구조를 파악하고 사용자(산업)단체 및 국가(관련부처)와 실질적인 힘의 관계를 형성하며, 산업정책을 직접 교섭할 수 있다. 산업적 대화는 산별노조를 중앙을 노동정치의 중심 행위자로 재배치하는 제도적 장치다.


국가자본주의의 확산과 산업정책의 정치화

현재 세계 경제는 ‘국가자본주의’의 확산이라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국가는 더 이상 시장의 조정자가 아니라 산업정책의 직접 주체로서 공격적으로 개입한다. 반도체, 에너지, 희귀광물, 물류는 경제정책을 넘어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변수로 전환됐다. 산업정책은 곧 지정학 전략이며, 국가 간 경쟁은 산업 자원과 공급망을 둘러싼 충돌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 당-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산업정책을 구사해온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현대판인 국가자본주의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약·범죄 대응이 표면적 명분이었으나, 실제로는 베네수엘라의 중유(heavy crude oil)를 둘러싼 미국의 경제적 이해가 작동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과 체포 시도는 지정학이 산업 자원과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조건에서 산업 전환의 구조적 비용은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고용 불안과 안전 위험은 구조적으로 확대된다.


이재명 정권기의 과제

이러한 조건에서 사회적 대화만이 노사관계의 중심 전략이 될 수 없다. 윤석열 정권 시기를 거치며 사회적 대화의 제도적 기반은 붕괴됐고, 조직노동은 방어 국면으로 전환됐다. 사회적 대화를 현 시기 노사정 관계의 중심에 놓으려는 행위는 고사성어 각주구검(刻舟求劍)을 연상시킨다. 이재명 정부 시기의 과제는 추상적인 노동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법률주의적 제도화를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는 데 있지 않다. 산업정책·고용정책·안전 정책을 직접 연결하는 산업적 대화의 제도화(법제화가 아니다!)가 핵심이다. 현재의 국내외 정세 하에서, 무엇보다도 국가자본주의화라는 지정학 경쟁 조건에서 노동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효과적 통로다. 무엇보다도 산업적 대화는 산업별교섭으로 넘어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하며, 이런 맥락에서 산업별 교섭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사회적 대화의 경로 의존을 넘어, 산업적 대화에서 산업별 교섭으로

노조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을 기본 구조로 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는 이 결합을 제도적으로 매개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국내외 정세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 지금, 한국 노사관계는 더 이상 사회적 대화의 반복이라는 낡은 경로의 의존에 머물 수 없다.

글로벌 차원에서 국가자본주의의 확산과 지정학적 충돌이 일상화된 조건에서는 노동의 요구 역시 사회 전체(사실은 노동시장 상층부를 향한)를 향한 추상적인 법률주의 주장(주4.5일제나 65세 정년 법제화 등)으로는 관철되기 어렵다.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 산업 전환 비용의 배분, 안전보건 강화와 같은 핵심 의제는 산업 단위에서 조직되고, 산업정책·고용정책이라는 정책 영역으로 직접 연결돼야 한다.


노동정치 재구성의 출발점: 산업적 대화와 산업별 교섭의 변증법

산업정책과 고용정책의 연결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형식이 바로 산업적 대화이며, 그 주체는 산별노조·산별연맹이다. 산업적 대화는 단순한 협의나 의견 교환의 장이 아니라, 노동의 경제적 요구를 국가와 자본의 산업정책과 직접 접속시키는 노동정치의 핵심 매개 장치다.

물론 현 단계에서 산업적 대화는 완결된 제도가 아니라, 산업별 교섭을 추동하는 전환 단계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산업적 대화의 실질적 성과는 선언적 합의가 아니라, 산업별 교섭 구조의 형성·강화로 이어질 때 비로소 현실화된다. 다시 말해 산업적 대화는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산업별 교섭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제도적 추진력이다.

이재명 정부 시기는 사회적 대화를 재현하거나 복원하는 시기가 아니다. 백여 년 전인 1930년대를 연상시키는 국가자본주의와 지정학 경쟁이 구조화된 조건 속에서, 산업적 대화를 중심으로 산업별 교섭을 제도적으로 진전시키고, 이를 통해 노동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다시 결합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한국 노사관계가 직면한 전략적 과제이며, 동시에 노동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출발점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6년 1월호  *이 글은 <참여와혁신> 2026년 1월호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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