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국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진화인가 퇴화인가?-(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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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국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진화인가 퇴화인가?-(강주현)

윤효원 1,509 04.04 11:46


 

  

    한국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진화인가 퇴화인가? 



강주현(서울시립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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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 진화(evolution)는 어떤 종이 과거로부터 현재에 걸쳐 점진적으로 변화해 온 과정을 의미한다. 반대로 퇴화(degeneration)는 복잡하게 분화된 기능을 가진 종이 단순한 기관으로 축소되는 것을 뜻한다. 이 개념에서 더 나아가 공진화(co-evolution)는 복수의 종이 서로 생존이나 번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공진화는 생태계 안에서 상호 연관된 진화라 할 수 있는데 서로 다른 종은 생존을 위한 경쟁, 협동,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빨리 나는 파리를 잡아먹기 위해 개구리의 혀는 더 길게 뻗게 되고, 개구리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파리는 더 빠르게 날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형 노동이사제, 그 종의 기원

공공기관 직원들이 직접 그들의 대표자를 임원으로 선출하여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한국형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2016 9월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보다 앞선 2014 11월 민선 6기 서울시장은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에 대한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이듬해 참여형 노사관계 모델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이 시행되었고, 그다음 해에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전문가TF 운용과 공청회 및 토론회가 이어졌다. 이후 2017 1월 서울연구원을 시작으로 2018 3월 서울다산콜재단에 이르기까지 총 16개 기관 22명의 노동이사가 순차적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18대 대통령의 행안부나 노동부는 서울시 노동이사제 정책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노동이사는 매우 생경한 제도로 인식되었다. 예컨대 △노동이사와 노동조합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대표이사가 노동이사를 통제하는지 △노조가 노동이사를 지배하는지 △직원을 대표하는 임원이 어떤 자격으로 무슨 역할을 이행하는지 등 미지의 영역에 대한 여러 의심과 불안이 존재하였다


그런 연유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오해와 이해의 간극은 컸었고 태생부터 노동이사제는 찬반양론의 격론 속에 놓여졌다. 대체로 진보정당과 노동계는 찬성했고 보수정당과 경영계는 반대했다. 무엇보다 민간기업으로의 노동이사 제도 확산을 특히나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 제도의 진화

서울시 투자출자기관 노동이사 제도의 시행을 둘러싼 찬반 양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했다. 광주시, 경기도, 인천시, 경남도, 부산시, 충남도 등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이 추진되었다. 부천시, 이천시, 안산시 등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도 노동이사제 도입 움직임이 나타났다


급기야 2021 9월에 결성된 <전국 공공기관 노동이사 협의회>에 따르면, 2023 8월 기준으로 전국 11개 시도의 96개 기관에서 101명의 노동이사가 선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수준에서 운용되는 한국의 공공기관 노동이사 제도는 법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이른바 약한 자생력 내지 면역력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 노동이사제 생태계의 확장

지방정부 차원의 노동이사제 확산에 이어 중앙정부 수준의 국가 공공기관에도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2017 3 18대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의 정권교체와 이후 2020 4월 치러진 21대 총선의 다수석 확보를 실현한 집권 여당은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 개정안은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역시 정치적으로 이슈화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시도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국회에서 계속 표류 되었다.


그런데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상황은 반전을 맞이하였다. 여당과 야당의 대선후보가 나란히 한국노총을 방문하여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천명하였고, 노동이사제 이슈는 TV 토론과 언론에서 다루어졌다. 이윽고 2022 1월에 공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그해 8월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시행되었다


2023 8월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총 87개 대상기관 중 56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었다. 그즈음에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 협의회>도 출범하게 되었다. 이로써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중앙정부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병립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고, 한국형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라는 생태계는 확장되었다

지방과 국가의 노동이사제, 공진화인가?

서울시에서 조례 제정을 통해 최초의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이래, 각 지자체 공공기관으로 제도가 확산되었고 이후 국가가 법률 개정을 통해 제도를 도입한 대응은 공진화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진화인지 퇴화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우선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 제도는 서울시 제도에 비해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예로 노동이사 정수에 있어서 서울시는 정원 100명 기관 이상에서 1, 300명 이상 기관에서 2명을 선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국가는 정원 500명 이상 기관에서 일률적으로 1명만 선출토록 하였다. 선출방법에 있어서도 서울시는 직원들의 직선 방식을, 국가는 과반수 노조의 추천 방식을 선호하였다.  


그런데 서울시 노동이사 제도도 역진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지방선거를 통해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집권당이 교체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일례로 여당 소속의 한 서울시의원은 특정 노총이 서울시 노동이사를 과대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이사 정수를 기존의 100명 이상 기관에서 300명 이상 기관당 1명으로, 300명 이상 기관에서 1,000명 이상 기관당 2명으로 축소하는 조례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이사 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민선 8기 서울시장 체제 하에서 시장단과 노동이사 정책간담은 중지된 상태다


또한 서울시는 노동이사의 직무활동비(회의비, 업무추진비 등)를 폐지하고, 교육훈련비(외부기관 전문교육, 노사정협의회 워크샵 등)를 축소하였다. 그 논리는 서울시 노동이사제가 중앙정부의 그것에 비해 과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한국형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지방과 국가가 상호 ‘공진화’ 관계에서 ‘공퇴화(共退化)’ 관계로 역진한 것처럼 보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앞으로 한국의 노동이사제 생태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노동이사 제도와 갈라파고스 제도 증후군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섬 무리로 찰스 다원이 다른 대륙의 생물과 무관하게 진화한 특이종을 발견한 곳이다. 처음에 갈라파고스 제도는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서식하는 생태계가 형성되었지만, 외부종이 유입되면서 면역력이 약한 고유종이 멸종되기 시작했다. 주지하다시피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갈라파고스 증후군(Galapagos syndrome)이라는 용어가 회자 되었다.


노동이사제가 먼저 시행된 유럽 대륙의 경우, EU 27개국 중 19개국에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공동결정 제도가 이행되고 있다. 독일은 일찍이 바이마르 헌법에서 수용한 공동결정 제도를 나치정권이 집권하면서 폐지하였고, 이후 노사 동수의 공동결정제가 다시 제정되어 500명 이상 조직의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의 1/3이, 2,000명 이상 조직의 경우 1/2이 노동이사로 배치된다


또한 노사관계가 대립적이었던 스웨덴은 사민당 집권 후 안정화를 찾아가면서 공동결정법과 노동이사 참여법을 제정하였고, 25명 이상의 공공과 민간 조직에서 이사회의 1/3이 노동이사 및 후보이사로 선출되고 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자본주의 기만술이라 보았던 프랑스에서도 공기업 노동이사제는 의무화되었고, 선택적이었던 민간기업 노동이사제 역시 의무화되어 국영기업 이사회의 1/3, 민영기업 이사회의 약 1/5이 노동이사로 채워지고 있다. 독일, 스웨덴, 프랑스 외에도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칼 등 19개국은 법률로 제도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벨기에, 영국 등 10개국은 개별 조직에서 단체협약으로 채택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한국의 공공기관 노동이사 제도는 진화하는 것일까? 퇴화하는 것일까? 어떤 경우라도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혼자 떨어진 섬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복잡할수록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은 왜 노동이사 제도가 필요한 것인가? 우리는 직장민주주의와 산업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는가?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 걸맞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내고 있는가? 이제 한국 사회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한다


출처: <e노동사회>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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