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자본에 잠식당하는 협동조합? - 이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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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에 잠식당하는 협동조합? - 이명규

() 816 10.07 14:10

[서평] 자본에 잠식당하는 협동조합?


이명규(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협동조합은 노동을 존중하는가』는 협동조합, 특히 아이쿱생협 등에서 발생한 노동분쟁 사례를 통해 협동조합 내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책이다. 저자 이정봉은 협동조합의 설립 목적과 가치 지향이 실제 운영 과정, 특히 노동문제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다. 


저자는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분쟁, 아이쿱생협연합회와 노동조합의 법적 다툼, 콥스토어경남에서의 노동조합 설립 과정을 살펴본다. 1장에서는 협동조합 노동에 대한 인식을 짚어보고, 2장과 3장에서 구례클러스터 노사분쟁의 전개 과정과 쟁점을 상세히 기술했다. 4장에서는 아이쿱 기업 콥스토어경남의 노동 상황을, 5장에서는 협동조합 노동에 관한 근본적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협동조합과 노동자


저자가 개별 사례에 집요할 정도로 천착한 까닭은 협동조합 내 노동문제에 얽힌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쟁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산발적으로 제기되는 노동 이슈 이면에는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현실 사이의 긴장, 협동조합 진영 내부의 갈등, 조합원과 노동자라는 이중 지위에서 오는 딜레마 등 근원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기업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우려스럽게 써 내려간다.

그동안 저자는 협동조합과 노동자라는 주제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다. 그는 선행 연구에서 '협동조합의 노동'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협동조합의 '사업체로서의 속성', '조직으로서의 속성', '조합원 조직으로서의 운영', '조합원 통제의 부작동' 등 조직 특성과 함께 '협동조합 정체성'이라는 상징적 규범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사례에서 확인되는 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구조적 요인을 설명하는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된다. 협동조합의 노동은 조직의 일반성과 특수성이 결합된 결과물임을 보여주는 논지로 발전되고 있다.


협동조합 연구의 새 과제


이 책은 협동조합 영역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협동조합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달리 조직 내부의 노동 현실은 열악하며, 조직의 민주적 운영이 노동자에게까지 미치지 않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구체적 사례 분석을 통해 추상적 담론 수준에 그치지 않고,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사례 간 비교를 통해 협동조합마다 처한 상황과 조건이 다름에도 노동문제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지점도 짚어냈다. 이는 협동조합 종사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제공하며, 협동조합 연구에도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협동조합의 조직 특성에 주목해 사례에서 발견되는 현상의 배경을 설득력 있게 해석하는 점이다. 협동조합의 노동이 일반 기업과 유사한 측면, 협동조합 고유의 속성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논의를 한 차원 끌어올리고 있다.


아울러 협동조합 내 노동조합 조직화 과정과 활동을 상세히 기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노동조합이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의를 현장감 있게 뒷받침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견지해야 할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도 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실천적 함의 


저자는 협동조합이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적극적 참여, 민주적 의사결정 등 협동조합 원칙이 노동 영역에서도 철저히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노동을 존중하는 일터를 만드는 게 진정한 협동조합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의 고유한 특성인 '조합원 참여'와 '민주적 운영'이 노동문제 해결에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조합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협동조합 운영에 적극 관여함으로써 노동자의 이해가 반영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자 역시 조합원으로서, 주체적 구성원으로서 역할 정립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특히 규모가 커진 협동조합일수록 노동 존중의 가치가 형해화 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협동조합의 성장이 오히려 노동문제를 심화시키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협동조합 정체성'으로 회귀해 원칙에 충실한 운영이 요구된다. 노동을 비용이 아닌 협동조합을 떠받치는 기반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시급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는 낙관에 경고등을 켜고, 오히려 자본에 잠식당할 수 있음을 환기한다. 그러면서도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원리를 노동존중의 가치와 접목한다면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협동조합 진영은 물론 노동운동에도 일침을 가하는 문제작으로서 논쟁을 촉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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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노동사회> 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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